뉴스100 김동초 기자 | 강화군 1600년 전통사찰 전등사를 가다!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 본사인 조계사의 말사이다. 381년(소수림왕 11년) 아도화상(阿道和尙)이 창건하여 진종사(眞宗寺)라고 했다고 하나 고려 중기까지의 역사는 전하지 않는다. 그 뒤 1266년(원종 7년) 중창하였고, 충렬왕의 비인 정화궁주(貞和宮主)가 1282년(충렬왕 8년) 승려 인기(印奇)에게 부탁해서 송나라의 대장경(大藏經)을 간행하여 이 절에 보관하도록 하고, 또 옥등(玉燈)을 시주했으므로 절 이름을 전등사로 고쳤다 한다. 그러나 현재 그 옥등은 전하지 않고 있다. 그 뒤 1337년(충숙왕 복위 6년)과 1341년(충혜왕 복위 2년) 이 절의 승려들이 중수하였다. 1605년(선조 38년) 불이 나서 전체 건물의 반 가량이 타 버렸고, 1613년(광해군 5년) 12월 또다시 불이 나서 나머지 건물이 모두 소실되었다. 이듬해 4월 지경(志敬) 등이 중심이 되어 재건을 시작해서 1625년(인조 3) 2월 옛 모습을 되찾았다.<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수도권 중 대표적인 사찰 중 하나로 강화도의 전등사가 우수한 장소로 손꼽히고 있다. 특히 전등사에서 차려지는 사찰 음식이
뉴스100 김동초 기자 | 팔부자 거리는 매향여고 맞은편 북수동 일대에 위치하고 있다. 팔부자 거리는 계획도시로서 수원의 경제를 발전시키고 부유한 도시로 육성키 위해 전국 8도의 부호와 상인들을 수원으로 옮겨 살게 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또한 옛 한양의 부자들에게 이자 없이 자금을 대출해 줌으로써 지금의 거리에 점포를 차리게 해주거나 이주자에게 자금을 대여하는 등 화성 축성의 토대를 마련해 주었다. 이 때 이들이 형성한 거리가 팔부자 거리며 상업의 진흥을 꾀함으로써 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풀게 했다고 해서 옛날에는 보시동이라 부르기도 했다. 또한 200여 년 전 안성의 종이 제조 장인이 수원에 옮겨 살면서 종이에 대한 전통성이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