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100 김동초 기자 | 문화도시 부천에서 마을을 관찰하고 문화적 과제를 살펴볼 단체를 모집한다. 부천문화재단(이하 재단)은 1월 30일(화)부터 2월 14일(수) 오후 2시까지 ‘마을 연구단’을 모집한다. ‘마을 연구단’은 올해 문화도시 조성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되는 <2024 부천마을프로젝트 ‘볼록뽈록’(이하 볼록뽈록)>의 사전 연구모임이다. ‘볼록뽈록’은 지역 문화 불균형을 해소하고 상생할 수 있는 구조를 마련하기 위해 마을을 유심히 바라보고 마을 문화를 더욱 풍성하게 살찌우려는 활동이다. 지난해 ‘볼록뽈록’은 그동안 권역별로 추진되었던 마을 사업들을 공모사업 형태로 전환하여 진행한 첫해로 총 11팀이 선정되어 프로젝트를 기획, 운영하였다. 또한 지난해 연말 연간 활동 결과를 공유하는 ‘볼록뽈록 마술쇼’를 복사골문화센터 2층 복사골 갤러리에서 선보였다. 이번에 모집하는 ‘마을 연구단’은 공모사업에 진입하고자 하는 지역 단체들이 지역 사회 이슈를 면밀하게 살펴보고, 마을 관찰을 통해 발굴한 문화적 과제의 해소 방안까지 도출하여 계획서를 작성해 봄으로써 공모사업 진행 시 프로젝트를 내실 있게 추진할 수 있도록 마련한 사업이다. 사전 연구모임 운영
뉴스100 김동초 기자 | 강화군 1600년 전통사찰 전등사를 가다!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 본사인 조계사의 말사이다. 381년(소수림왕 11년) 아도화상(阿道和尙)이 창건하여 진종사(眞宗寺)라고 했다고 하나 고려 중기까지의 역사는 전하지 않는다. 그 뒤 1266년(원종 7년) 중창하였고, 충렬왕의 비인 정화궁주(貞和宮主)가 1282년(충렬왕 8년) 승려 인기(印奇)에게 부탁해서 송나라의 대장경(大藏經)을 간행하여 이 절에 보관하도록 하고, 또 옥등(玉燈)을 시주했으므로 절 이름을 전등사로 고쳤다 한다. 그러나 현재 그 옥등은 전하지 않고 있다. 그 뒤 1337년(충숙왕 복위 6년)과 1341년(충혜왕 복위 2년) 이 절의 승려들이 중수하였다. 1605년(선조 38년) 불이 나서 전체 건물의 반 가량이 타 버렸고, 1613년(광해군 5년) 12월 또다시 불이 나서 나머지 건물이 모두 소실되었다. 이듬해 4월 지경(志敬) 등이 중심이 되어 재건을 시작해서 1625년(인조 3) 2월 옛 모습을 되찾았다.<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수도권 중 대표적인 사찰 중 하나로 강화도의 전등사가 우수한 장소로 손꼽히고 있다. 특히 전등사에서 차려지는 사찰 음식이
뉴스100 김동초 기자 | “땅 위에 옷을 짓다” 또는 “건축물은 옷이다.”라는 정말 신선한 문장을 구사하는 이가 있다. 양평군 강하면 강남로458번지에 위치 한 ‘카포레’ 즉, 숲속의 캐비넷이라는 복합문화 예술공간(갤러리, 카페, 야외공연장, 사계절 정원)등을 운영하고 있는 패션디자이너 사라(SARAH) 김정숙 씨다. 사라 김정숙 패션디자이너는 현대 감각과 현대 그 이상을 넘나드는 생각으로 건축가(곽희수) 와 ‘카포레(CAFORE/CABINET IN FOREST)’를 탄생시켰다. 홍익대 출신의 곽희수 건축가는 멋진 철학을 소유한 보기 드문 현대의 건축가다. 곽 건축가의 특징은 ‘CAFORE(카포레)’에서 묻어나오듯 완벽할 정도의 개방감과 전망(View)을 중시하는 스타일이다. ‘CAFORE’는 사라 김정숙 디자이너가 30년 전 양평 강하지역에 2,000평의 땅을 매입해 오랫동안 건축물을 구상 하다가 2019년에 준공 했으며, 오랜 시간을 공을 들여온 건물이다. 1층은 갤러리(300평)로서 작가들에게 무료로 전시공간을 내어주고 있다. 지난 5월 1일~30일까지 한 달 동안 홍익대 출신 미술학 박사 박정선 씨의 ‘알 수 없는 풍경’이란 전시회가 열린 바 있고,
뉴스100 김동초 기자 | 팔부자 거리는 매향여고 맞은편 북수동 일대에 위치하고 있다. 팔부자 거리는 계획도시로서 수원의 경제를 발전시키고 부유한 도시로 육성키 위해 전국 8도의 부호와 상인들을 수원으로 옮겨 살게 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또한 옛 한양의 부자들에게 이자 없이 자금을 대출해 줌으로써 지금의 거리에 점포를 차리게 해주거나 이주자에게 자금을 대여하는 등 화성 축성의 토대를 마련해 주었다. 이 때 이들이 형성한 거리가 팔부자 거리며 상업의 진흥을 꾀함으로써 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풀게 했다고 해서 옛날에는 보시동이라 부르기도 했다. 또한 200여 년 전 안성의 종이 제조 장인이 수원에 옮겨 살면서 종이에 대한 전통성이 이어지고 있다.